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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후기/칼럼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by 재치왕훈이 201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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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지난 주말 개인적인 일이 있어 서울을 다녀왔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던 찰나 한 숨이 ‘후~’하고 나왔다.

내 앞 날에 대한 고민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 것이다.

 

난 취직하는 것보다는 창업을 하고 싶었다.

작년에 창업을 하게 될 기회가 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모님 몰래 휴학도 하고 일에 매달렸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결국 하는 일 마다 잘 되지 않았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망했다.’라는 말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지금의 내 처지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는 휴학 중이라고 알고 있는 아들, ‘김 재 훈’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하는 막연한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그러던 중 무심코 바라본 차창 밖 풍경 속에서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굉장히 큰 건물의 간판에 노란색 바탕과 검은 색 글씨로 아주 크게, 눈에 확 들어오게 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저 문구를 보고 예전에 믿었었던 부처님을 마음속에 떠올려 기도를 해보았지만, 내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이미 지난 고3 수능 시험 때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난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기도를 해보았는데 역시나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건물도 커다란 걸 보니 '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며 위안을 받고 있겠구나' 하는 기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 건물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건물이 아니기를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요즘 사회에서는 사이비 종교로 인한 피해 사례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사이비 종교라는 것을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에 피해를 주는 종교를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나 자신과 타인의 삶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붙잡고 설교를 하거나,

아무 집이나 찾아가서 벨을 누르고 문을 열어달라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고

모든 사회 속 관계를 끊어버리고 종교에 몰두하며 자신과 주위의 삶을 파괴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가 아파서 수술을 해야 고칠 수 있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수술을 거부하고 기도를 통해 살릴 수 있다고 믿어 아이를 죽게 만든 부부의 이야기,

가진 모든 돈을 종교에 바쳐 가정을 파탄 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종교적인 힘을 이용하여 여성들의 몸을 빼앗거나

돈을 갈취한 종교 집단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온다.

범죄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부터 사회적인 문제를 낳는 일들까지,

세상에는 올바르지 못한 기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회적 부작용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타인들의 삶과 사회에 까지 피해를 끼치는 옳지 않은 기도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 집은 불교를 믿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능을 치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엄마와 함께 절에 다녔다.

절에 갈 때마다 용돈을 아껴서 1000원, 2000원 정도 희사도 하곤 했다. (*희사: 아무 후회없이 기쁜 마음으로 재물을 내놓는 일) 

절에 다니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고 그 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놀기도 했다.

나도 고3때까지 종교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불교라고 했고 나는 종교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오고 나서 절에 가지 않았다. 대구로 학교를 오게 되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되는 것이 힘들게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존재를 믿고 사는 것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나 자신을 믿고 사는 것이 더 낫겠다.’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삶 속에서 불안감을 느낄 때 마다 예전에 믿던 부처님을 떠올리며 나의 바램처럼 되기를 빌 때가 있다.

나는 운이 참 좋은 케이스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는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도와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현실이 존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그만하게 되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소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실의 존재들이 있을까? 아마 나보다는 적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 답답한 것이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답답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그 답답한 것들을 풀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망가져도, 타인의 삶과 사회에 피해를 주더라도

그들은 잘못된 기도를 계속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기 때문이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그들의 통로가 되어 주어야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보다 운이 좀 좋은 케이스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농촌으로 시집을 왔고 남편은 바빴으며 아이들을 세 명이나 키워야했다.

그녀는 그녀의 고충을 알아줄,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절한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그녀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좋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그녀에게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

그녀는 아직까지 사이비 종교라고 불리는 곳에 나가고 있다. 가족들은 쉬쉬하고 있는 일이다.

그녀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전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그녀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이비 종교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한 사람의 유일한 통로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2011년 신문방송학과 고급기사작성론 수업을 들으며 과제 제출을 위해 썼던 글.

**사진은 네이버 검색에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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