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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은 제게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주로 학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람책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마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했기 때문이지요. 사람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려주는 살아있는 '책'을 말합니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과 20~30대 초반으로 구성된 사람책의 만남인 터라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마을을 찾았습니다.
경북 칠곡군 학상리 마을. 이 마을에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 카페 '학수고대'가 있습니다. 카페 외벽에 쓰인 '당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자 걱정은 사라지고 따뜻함으로 마음이 채워졌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마을 주민들과 사람책 분들의 만남.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 사람의 휴식처 '아울러 사람도서관' 학상리 마을센터 학수고대에서 열린 사람도서관 | |
ⓒ 김재훈 |
사람책 이야기 하나 "전공과 인생은 달라요"
"어머니, 이게 지금 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제가 공고를 나왔는데요, 방황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그 당시 담임 선생님 덕분에 다시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고 4년제 대학교도 진학해 창업까지 할 수 있게 됐답니다. 혹시 아드님 있으세요?"
"우리 아들도, 공고 나와서 대학교를 갔는데 지금 군대에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하는 전공을 안 살리고 다른 걸 하겠다는 거라. 제가 참 걱정이 많아졌어요."
"아, 그러세요? 저도 지금 하는 일은 대학교 전공이랑은 달라요. 걱정 많이 되시겠지만 아드님을 믿고 지지해주시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드님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같은데 응원해주시는 건 어떠세요?"
▲ '누구나 꿈을 가질 자격이 있고 기회가 있다'의 사람책 조동인 웹서비스 및 홈페이지 개발 기업 '미텔슈탄트'의 대표인 사람책 조동인씨가 창업을 하게 된 이유와 목표에 대해 말하고 있다. | |
ⓒ 김재훈 |
사람책 이야기 둘 "부모님 아닌 당신 인생을 사세요"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엄청 혼이 났었죠. 그때 정말 힘들었고 부모님과의 사이도 엄청 안 좋아졌어요. 참 많이 울었죠.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심히 해서 지금은 교사의 꿈을 이루었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겠어요. 기특하네요, 유진씨."
"유진씨 잘못한 것 없네요. 유진씨가 맞아요. 유진씨 길을 가세요."
사람책 이야기 셋 "걷고 걸으며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청소년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과 다른 모습에 분노하기도 했죠. 하지만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죠. 그리고 운동을 하기 시작해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도 가고 대학원도 가게 됐는데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10여 년 동안 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어보고, 이곳저곳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알게 됐어요. 제가 걷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 말이죠."
"힘든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여행하다니 대단하시네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꼭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고 싶은데, 제게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저만의 시간이 있을까요? 젊음이 정말 부럽네요."
▲ '누구나 장애는 있다'의 사람책 이재헌. 선천적 장애, 남과 다른 점에 대해 분노했지만 장애를 받아들이고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사람책 이재헌님. | |
ⓒ 김재훈 |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삶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민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교사 꿈 이룬 유진씨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리고 내 손자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고민이 이해되고 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학상리 마을 주민분들의 모습 우리가 오기를 학수고대하셨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우리를 정겹게 대해주셨다. | |
ⓒ 김재훈 |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 딸내미, 바로 오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게 없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장님에게 들었지만 책 읽는 것 보다 이렇게 개인의 역사를 직접 들으니 정말 좋다. '대리만족' 보다 더 좋은 '대리체험'이었다."
준비했었던 2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우리는 둘러앉아 서로 인생 이야기를 한참 나눴습니다. 공간을 가득 채운 따뜻한 느낌을, 몇 장의 사진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만약 이곳에 시인이 있었다면 마을에서 열린 사람도서관을 보고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합니다.
어느덧 창 밖은 검게 물들었고 우리는 단체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으로 그날의 사람도서관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날 함께 찍은 사진은 그 날의 따뜻했던 바로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 또 하나의 가족 사진 사람책분들, 마을 주민분들과 찍은 단체사진 | |
ⓒ 김재훈 |
▲ 살아있는 책을 만나는 사람도서관 따뜻했던 그날의 기억을 기록하며. | |
ⓒ 김재훈 |
8월 29일 오마이뉴스에 나온 세번째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5680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감동을 읽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노력한다.
현장 사진을 찍고
녹취를 하고
메모를 하고
다시 들으며, 보며 글을 쓴다.
노력하다보면 조금씩 좋아지리라.
살아있는 책을 만날 수 있는 사람도서관처럼
살아있는 글을 만날 수 있는 나의 기사들이었으면 좋겠다.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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