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몽.
2011년에 쓴 리뷰.
한홍구님이 쓴 '대한민국사' 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 영화가 언급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말하는 사람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점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남긴 <라쇼몽>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극화한 이 영화는 부부가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남편은 살해당하고
아내는 겁탈당한, 어찌보면 사실관계가 아주 단순한 강도살인, 강간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도적의 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무당의 입을 통해서 죽은 남편의 입장에서,
그리고 숨어서 사건을 지켜본 나무꾼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하여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너무나 다른 네 편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 어느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쿄토 지방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둑이라는
다조마루는 그가 여자를 겁탈하고 남편을 죽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칼싸움도 제대로 못하는 겁쟁이로 또 다른 겁쟁이인 여인의 남편관의 싸움에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까요. 다조마루는 도적으로서 자신의 허영만이라도 지키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다조마루의 이야기는 여인의 강인함을 강조했지만,
반면에 여인은 자기의 약함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남편은 자기가 몸을 버렸다고 냉랭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여인은 남편에게 자기를 죽여줄 것을 호소합니다. 그 여인은 결국 남편을 죽이고 자살하려 했으나
자살에 실패했다고 울면서 말합니다.
무당의 입을 통해서 죽은 남편은 아내를 비난합니다. 아내가 도적 다조마루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다조마루와 달아나다가 멈춰선 아내는 도적에게 남편을 죽이고 가자고 말했고 도적조차 그 말에 놀랍니다.
다조마루는 여인을 쓰러뜨리고 발로 밟고는 남편에게 이 여자를 죽일까 살릴까 물었습니다.
마침 여자가 달아나자 다조마루는 여자를 쫓아가다가 몇 시간 뒤 돌아와 남편을 풀어주었습니다.
다조마루가 떠난 뒤 남편은 배신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말합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객관적 입장이라 할 수 있는 나무꾼도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사건의 현장에서 값비싼 단검을 훔쳐갔으니까요.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고,
영화에 등장하는 승려는 이런 인간사의 모습이 전쟁이나 지진, 화재나 역병보다 훨씬 더 무섭다고 탄식합니다.
반쯤 부서진 건물에 라쇼몽이란 현판이 걸린 큰 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장들이 실상은 잘 포장된 거짓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집니다. (저에게는 말이죠.)
이 머리말을 보고 저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다조마루, 여인, 여인의 남편, 나무꾼 모두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하나의 사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 한 쪽이 진실이 되면 다른 한 쪽의 이야기는 거짓이 되어 버립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정말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승려의 말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반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었습니다.
약 한 달동안 친구들과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제가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사람이 무서웠기 때문이라는 한 가지 이유는 생각이 납니다.
그 경험이 이 영화와 함께 겹쳐지면서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라쇼몽이라는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라쇼몽이라는 뜻은 오사카에 있는 한 궁궐의 남문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영화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적나라하게 묘사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라쇼몽=나생문=羅生門
이라는 한자에서 풍기듯이 이 세상에 펼쳐진 인생을 담고 있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영화 한 번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2011년에 쓴 리뷰이다. 인문학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보게된 '대한민국사'라는 책에서
처음 '라쇼몽'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한홍구님은 역사는 이야기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포장된다는 말을 하며
이 영화를 예로 듭니다.
이 영화 또한 어떠한 관점과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지듯
한 가지 분명한 사건에 대해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고,
이렇게 보여질 수도 있고,
저렇게 보여질 수도 있는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한 가지 사실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쨋거나 저쨋거나 지켜야 할 것, 변치 말아야할 것은 변함이 없어야겠지만요.
영화가 흑백이고, 오래되기는 했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다면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면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기 중심을 잘 잡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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