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1965 ‘현대문학’ 등단)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 2008년) ‘방문객’ 전문
'사람이 온다는 건'으로 시작하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았던 시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사무실(어색하지않은창고)에 이웃사촌, 형님이 찾아왔다. 심심해서 들렸다는 그는, 그래도 자신이 그냥 온 것은 아니라고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내가 그냥 온 것만은 아닌 줄 알아요?" "왜요? 형님?" "제가 시 하나 알려드릴까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아, 오랜만에 외우니 잘 안 외워지네. 그러니까 저는 그냥 온 것은 아니에요. 저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온 것이랍니다." "......" 그렇다. 그의 얼굴에서 그의 세월이,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에서 그의 오늘이, 그가 이야기하는 말과 생각에서 그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왔다는 생각을 한다면 더 의미있게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형님이 시를 다 외우지 못해서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재훈씨, 엄지 손가락에 침을 살짝 바르고 가만히 있으면 시원해지지 않아요? 바람이 부는 것 처럼. 바람은 여기 이미 있었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죠. 그리고 왜 사람들은 마음이 촉촉하다, 건조하다 이런 말들을 쓸까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아, 나 이제 가봐야겠다. 안녕~!" "......." 집에 돌아와서 시의 전문을 보니 왜 형님이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마음을 촉촉하게 먹는다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바람을 느끼듯 그 사람에게 전해져 오는 것들을 보다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촉촉해질 수 있을까? 허나 시인은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마음이 바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었다. 그건 시인이 바람이 되어 모두를 느낄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하나 더 개인적인 생각을 적자면 나 또한 그런 바람이 되고 싶다.
-재치왕훈이 <시 애호가>
*필경 : 끝에 가서는
환대 :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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